공공기관 109개 통폐합, 왜 이렇게 서두르나? 중국식 국유기업 대형화가 떠오르는 이유

 

공공기관 109개 통폐합 추진과 중국 국유기업 대형화 정책을 비교한 이미지(출처/한국할매의 생활경제 노트)


정부가 전체 공공기관의 약 20%에 해당하는 109개 기관과 조직을 통폐합하거나 재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전공기업 5개사는 하나로 합치고, 부산·인천·울산·여수광양 등 4개 항만공사도 통합한다고 합니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합치고, 코레일과 SR의 고속철도 운영체계도 일원화하겠답니다. 반대로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쳐 만든 LH는 다시 개발 기능과 주거복지·자산관리 기능으로 나눌 계획이라고 합니다.

정부는 이를 통해 중복 기능을 없애고 공공기관의 경쟁력과 정책 수행 능력을 높이겠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공공기관 개혁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조직이 여러 개로 나뉘어 국민 세금이 낭비된다면 과감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방만한 경영과 불필요한 임원 자리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 생활과 국가 안보에 직결된 에너지·철도·항만·주택 분야를 한꺼번에 재편하면서, 충분한 검토와 비용 계산도 없이 먼저 발표부터 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문이 듭니다.


핵심 요약

  • 정부가 발전·항만·에너지 분야를 포함한 공공기관 109개 감축과 기능 재편을 추진합니다.
  • 기존 직원의 고용과 정원을 유지하고 신규 채용도 줄이지 않겠다고 밝혀 ‘무엇을 줄이는 개혁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 통합 비용과 장기 절감 효과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개편안이 먼저 발표됐습니다.
  • 국가 기간산업의 대형 국유기업화를 추진했던 중국과 구조적으로 닮은 부분도 있어 더욱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109개를 줄인다는데 직원과 정원은 그대로 유지한다?


정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비대해진 기능과 중복 업무를 정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통폐합 대상 기관에서 근무하는 일반직과 무기계약직 약 12만 명의 고용을 승계하고, 기존 정원도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통폐합 전후로 임금과 처우가 낮아지지 않도록 하고 신규 채용도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기관을 합친다고 무조건 직원을 해고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복된 관리 인력을 현장이나 새로운 사업으로 재배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관 수를 109개나 줄이면서 직원과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신규 인력까지 계속 채용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줄어드는 것인지 정부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기관의 간판과 사장 자리 몇 개만 줄이고 기존 조직과 인력이 대부분 그대로 남는다면 그것을 대대적인 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부가 “비용 절감이 이번 개혁의 주된 목표는 아니다”라고 설명한 점입니다.

공공기관의 비대화와 부채 누적이 국민 부담을 키웠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해놓고, 정작 비용 절감은 핵심 목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통폐합을 추진하는 진짜 핵심 목적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통합 비용과 절감 효과도 계산하지 않고 발표했나


109개 기관을 손보는 일은 사무실의 부서 몇 개를 합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기관을 통합하려면 전산망과 회계체계, 임금과 직급, 인사제도, 복리후생, 자산과 부채를 모두 조정해야 합니다. 본사 위치를 정하는 과정에서는 지역 간 갈등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통폐합에 들어갈 비용과 이후 절감될 비용을 발표 전에 구체적으로 산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통합이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정말 나은지, 5년이나 10년 뒤 어느정도까지 국민 부담이 줄어드는지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발표된 109개 대상 가운데 80% 이상은 법률 개정까지 필요하다고 합니다. 

국가의 중요한 산업조직을 바꾸려면 먼저 다음 사항들을 따져봐야 합니다.

1. 기관별 중복 기능이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2. 통합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인지
3. 장기적으로 절감할 예산은 얼마인지
4. 기존 부채는 어느 기관이 떠안을 것인지
5. 전기·가스·철도 요금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6. 경쟁이 사라지면서 서비스가 나빠질 가능성은 없는지
7. 지역의 일자리와 경제에는 어떤 충격이 생기는지
8. 통합과 현행 유지 중 어느 쪽이 국민에게 유리한지

이런 선제적인 분석과 국민적 논의를 거친 뒤에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결론부터 먼저 크게 발표하고 세부적인 근거와 실행계획은 나중에 만들겠다는 모습으로 비칩니다. 평범한 국민의 눈에도 정책 결정의 순서가 거꾸로 된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에 합친 LH를 17년 만에 다시 나눈다


이번 개편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LH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토지개발과 주택건설의 중복 업무를 없애고 효율성을 높이겠다며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를 합쳤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관이 LH입니다.

그런데 17년이 지난 지금 이 정부는 거대해진 LH의 조직과 재무구조를 문제로 지적하며 다시 두 개의 기능으로 나누려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통합하면 중복 기능이 사라지고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분리해야 주택 공급과 주거복지의 전문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2009년의 통합은 잘못된 결정이었는지, 그동안 발생한 비용과 부작용은 얼마였는지부터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 정책의 실패 여부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채 또 다른 대규모 통합과 분리를 추진한다면, 몇 년 뒤에는 지금 합치는 발전공기업과 에너지공기업도 다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합치는 비용도 국민 부담이고 다시 나누는 비용도 결국 국민 부담입니다.


발전·에너지·항만을 거대한 단일 공기업으로 만드는 이유


이번 개편은 단순히 작은 기관과 중복 업무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발전 5개사,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지역별 항만공사처럼 국가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관을 거대한 단일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러 기관이 나뉘어 있으면 비슷한 투자가 반복되고 의사결정이 느려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관끼리 경영성과를 비교하고 서로 견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하나의 거대 공기업으로 합치면 정부가 에너지전환과 해외 자원개발, 항만정책을 신속하게 밀어붙이기는 쉬워집니다. 그러나 판단이 잘못됐을 때 그 피해도 한 조직 전체와 국민에게 집중됩니다.

경쟁과 비교 대상이 사라지면 방만한 경영을 발견하기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거대 기관의 사장과 임원 인사에 정치권이 개입한다면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국가 기간산업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번 정책은 단순한 몸집 줄이기라기보다 국가 기간산업의 의사결정권을 거대한 공기업과 정부 중심으로 집중시키는 산업조직 개편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분산형 체제보다 집중형 체제가 국가에 더 이로운지 객관적인 자료로 증명해야 합니다.


중국도 국유기업을 이런 방식으로 합쳤다


중국 역시 에너지·철도·해운·광물·조선·통신 등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산업에서는 국유기업을 정부 주도로 통합해 왔습니다.

중국의 두 대형 철도차량 회사였던 CNR과 CSR은 하나의 거대한 철도기업으로 합쳐졌습니다. 중국의 양대 해운기업인 COSCO와 차이나쉬핑도 통합됐으며 광업과 금속 분야에서도 대형 국유기업 간 합병이 추진됐습니다.

중국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국유기업을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효율적인 국가대표 기업’으로 만들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에는 또 다른 효과가 있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기업의 의사결정권과 자산을 대형 국유기업에 집중하고, 정부와 공산당이 핵심 산업의 경영과 인사를 더 쉽게 통제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번 정부의 정책도 발전·석유·가스·항만기관을 대형 단일기관으로 합쳐 글로벌 경쟁력과 국가정책 수행 능력을 높이겠다는 점에서 중국의 국유기업 대형화 방식과 닮은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한국과 중국의 정치·경제체제가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국가 기간산업의 조직을 대형화하고 의사결정권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방향이 비슷하다는 사실만큼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통폐합 과정에서 새롭게 생기는 자리는 누가 차지하나


기관을 합치면 기존 임원 자리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거대 통합기관의 사장·이사·감사·본부장과 각종 위원회 및 태스크포스가 새로 만들어집니다.

LH를 나누면 두 기관의 경영진과 관리조직도 다시 구성해야 합니다. 본사와 지역본부를 어디에 둘 것인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따라서 공공기관 통폐합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막대한 자산과 예산, 인사권을 다시 배분하는 과정입니다.

정부와 주요 인사들의 전문성·도덕성에 대해 국민적 불신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투명한 절차가 필요합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통합기관의 경영진에 임명되는지, 정치권과 가까운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마련할 것인지 공개해야 합니다.

이런 안전장치 없이 거대 공기업만 만들어 놓는다면 국민이 “개혁을 위한 통합인가, 산업과 인사권을 장악하기 위한 재편인가”라는 의문을 품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 없는 개혁을 걱정한다


저는 공공기관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기관은 없애고 중복 기능은 합쳐야 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면 더욱 엄격하게 효율성과 책임성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09개 감축’이라는 큰 숫자가 개혁의 성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몇 개를 줄였는지가 아니라 국민 세금이 얼마나 절감되는지, 부채가 얼마나 감소하는지, 서비스가 얼마나 편리해지는지, 전기·가스·철도 요금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로 평가해야 합니다.

정부가 정말 국민과 국가를 위한 개혁이라고 자신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합니다.

첫째, 왜 이 기관들을 반드시 합쳐야 합니까?
둘째, 통합과 현행 유지 방안을 비교한 비용·편익 분석은 어디에 있습니까?
셋째, 직원과 정원, 신규 채용을 유지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줄이겠다는 것입니까?
넷째, 거대 공기업의 독점과 정치적 인사 개입을 어떻게 막을 것입니까?
다섯째, 통합이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집니까?
여섯째, 중국식 국유기업 대형화와 무엇이 다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 없이 통폐합부터 밀어붙인다면 국민들의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할매의 한마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은 발표의 크기가 아니라 준비의 깊이로 평가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국가 기간산업을 통째로 손보는 일이라면 더더욱 여러 가능성을 비교하고 전문가와 노동자, 국민들의 의견을 시간을 갖고 충분히 듣고 검토해야 합니다. 예상되는 비용과 부작용을 먼저 계산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공개한 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그런 선제적 과정은 생략한 채 109개 통폐합이라는 결론부터 서둘러 발표했다면, 평범한 국민들도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의심하는 국민들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의심을 해소할 책임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 개혁이 정말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기관별 통합 근거와 예상 비용, 장기적인 절감액, 부채 처리 방식, 인사 원칙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거대한 공기업도, 거창한 개혁 구호도 아닙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 낭비되지 않고 전기·가스·철도·주택 서비스 같은 기반 시설들을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번 건 처럼, 충분한 검증 없이 서두르는 개혁은 국가를 위한 혁신이 아니라, 훗날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수습해야 할 값비싼 정책 실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자료

  1. 정부 공공기관 기능개혁 추진방안
  2. 정부 브리핑 및 질의응답 전문
  3. 통폐합 비용과 절감 효과 관련 보도
  4. 중국 국유기업 통합 사례 분석
  5. OECD 국유기업 정책 및 경쟁 영향 분석


한국 할매의 생활경제 노트

"삶을 읽고 경제를 공부하는 한국 할매입니다. 우리 주변의 복잡한 경제 뉴스를 할매의 시선으로 쉽게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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