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9천억 원의 퇴직연금 머니무브, 수익률만 보고 갈아타면 안 되는 이유
퇴직을 10개월 앞두고 생활비와 대출, 국민연금 수령 시기 등을 하나씩 점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퇴직연금에도 눈길이 갑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는 매달 받는 월급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지만, 퇴직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지금까지 쌓인 퇴직연금을 어디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됩니다.
때마침 퇴직연금을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기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작된 2024년 10월 말부터 2026년 6월 말까지 금융회사 사이를 이동한 퇴직연금은 총 15조9천억 원, 약 25만 건에 이릅니다. 하루 평균으로 계산하면 261억 원, 409건꼴입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6조9천억 원이 이동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3조2천억 원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습니다. 특히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겨간 금액은 5조2천억 원으로 전체 이전액의 약 33%를 차지했습니다.
핵심 요약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작된 뒤 15조9천억 원이 금융회사 사이를 이동했습니다.
증권사로 옮긴다고 수익률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계좌 안에서 어떤 상품을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퇴직을 앞둔 60대는 기대수익률보다 손실을 회복할 수 있는 기간과 퇴직 후 생활비 계획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퇴직연금 금융회사를 바꾸려면 보유하고 있던 상품을 해지하거나 매도한 뒤 현금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금의 만기가 끝나기 전에 해지하면 약정이자를 모두 받지 못할 수 있고, 펀드나 ETF 가격이 내려간 시점에 매도하면 손실이 확정될 수도 있었습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기존에 보유한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다른 금융회사로 옮길 수 있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예금과 일부 원리금보장상품, 공모펀드와 ETF 등 주요 상품이 이전 대상에 포함됩니다.
다만 모든 상품이 그대로 옮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받을 금융회사가 동일한 상품을 취급하지 않거나 실물이전 대상이 아닌 상품이라면 매도 후 현금으로 옮겨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금융회사에 계좌부터 만든 뒤 이전 가능 상품과 매도해야 하는 상품을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실물이전은 원칙적으로 같은 제도 사이에서 가능합니다.
| 현재 계좌 | 옮길 수 있는 계좌 |
|---|---|
| DB형 | 다른 금융회사의 DB형 |
| DC형 | 다른 금융회사의 DC형 |
| IRP | 다른 금융회사의 IRP |
금융당국은 앞으로 DC형 퇴직연금을 다른 사업자의 IRP로 옮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녹취 외에 비대면 방식으로 이전 의사를 확인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추진 중인 개선안이므로 현재 적용되는 제도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DB·DC·IRP는 누가 운용하는지가 다릅니다
퇴직연금을 옮기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가입한 제도가 DB형인지, DC형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 구분 | 운용 책임 | 퇴직급여의 특징 |
|---|---|---|
| DB형 | 회사 | 퇴직할 때 받을 금액이 사전에 정해짐 |
| DC형 | 근로자 | 회사가 부담금을 납입하고 운용 결과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짐 |
| IRP | 개인 | 퇴직급여와 개인 추가 납입금을 직접 운용 |
DB형은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하고 근로자가 받을 퇴직급여는 근속기간과 평균임금 등을 기준으로 결정됩니다. 투자 성과가 좋거나 나쁘더라도 운용 책임은 기본적으로 회사에 있습니다.
DC형은 회사가 매년 근로자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계좌에 넣고 근로자가 직접 운용합니다. 어떤 상품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퇴직할 때 받는 금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IRP는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급여를 한 계좌에 모아 관리하는 개인형 퇴직연금입니다. 본인이 추가로 돈을 납입해 세액공제를 받을 수도 있지만, 계좌 안에서 선택한 투자상품의 성과도 본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왜 증권사로 옮기고 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상품 선택의 폭입니다. 증권사 IRP와 DC형 계좌에서는 ETF와 펀드 등 다양한 투자상품을 비교적 편리하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 앱을 이용해 적립금의 구성과 수익률을 확인하기 쉽고, 예금보다 높은 장기 수익률을 기대하는 가입자도 늘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2025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천억 원으로 전년보다 16.8% 증가했습니다. DC형과 IRP의 비중은 전체의 54.3%를 차지했고, ETF 투자금액은 48조7천억 원까지 늘었습니다.
퇴직연금을 회사가 알아서 관리하는 돈이 아니라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노후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금융회사들도 낮은 수수료와 다양한 상품, 상담 서비스를 앞세워 퇴직연금 고객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증권사로 옮기면 수익률이 무조건 높아질까요?
여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오해가 있습니다. 증권사로 계좌를 옮기는 것과 퇴직연금 수익률이 높아지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증권사에 계좌를 만들어도 적립금을 현금성 자산이나 낮은 금리의 상품에 그대로 두면 수익률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식형 ETF와 펀드 비중을 높이면 수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지만 원금손실 위험도 커집니다.
은행에도 원리금보장형 상품뿐 아니라 일부 펀드와 투자상품이 있고, 증권사에서도 예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간판만으로 안전성과 수익률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계좌 안에 어떤 상품이 들어 있고, 안전자산과 투자자산을 어떤 비율로 나누었는가입니다.
금융회사에서 제시하는 최근 1년 수익률만 보고 옮기는 것도 위험합니다. 주식시장이 크게 오른 해에는 주식형 상품의 수익률이 높게 보이지만, 시장이 하락하면 손실로 바뀔 수 있습니다. 과거에 높은 수익을 냈다는 사실이 앞으로의 수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퇴직을 앞둔 60대는 시간이 다릅니다
30대나 40대 직장인은 시장이 하락해도 퇴직까지 남은 기간에 손실을 회복할 기회가 있습니다. 반면 퇴직이 1년 안팎으로 다가온 사람은 사정이 다릅니다. 퇴직 직후 사용할 생활비까지 투자상품에 넣었다가 시장이 하락하면, 가격이 회복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손실을 확정한 채 돈을 찾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퇴직연금 전액을 장기간 현금이나 낮은 금리의 상품에만 두는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닙니다. 퇴직 이후에도 20년 이상 생활해야 한다면 물가상승으로 돈의 구매력이 줄어드는 위험도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퇴직연금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 퇴직 직후 몇 년 안에 사용할 생활비
- 대출 상환이나 의료비처럼 용도가 정해진 돈
- 당장 사용하지 않고 장기간 운용할 수 있는 돈
가까운 시일 안에 사용할 돈은 안정성과 현금화 가능성을 우선하고, 장기간 사용하지 않을 돈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투자상품을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구체적인 비율은 월 생활비와 다른 연금소득, 대출 규모,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퇴직연금이면 모두 예금자보호를 받을까요?
퇴직연금 계좌라고 해서 계좌 안의 모든 돈이 예금자보호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DC형과 IRP 안에 들어 있는 예금자보호 대상 예금은 일반예금과 별도로 금융회사별 1인당 1억 원까지 보호됩니다. 그러나 ETF와 펀드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며 운용 결과에 따라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ETF와 펀드 등 투자상품은 금융회사의 고유재산과 구분해 관리됩니다. 증권사가 문제가 생기면 투자상품의 가격이 무조건 0원이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금자보호 여부와 투자상품의 분리보관은 서로 다른 제도이므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퇴직연금 계좌인가’가 아니라, 그 계좌 안에 들어 있는 개별 상품이 예금인지 ETF인지 펀드인지입니다.
옮기기 전에 반드시 확인할 것
퇴직연금을 다른 금융회사로 옮기기 전에는 다음 내용을 꼭 확인해야 합니다.
- 현재 가입한 퇴직연금이 DB·DC·IRP 중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 적립금과 최근 수익률, 상품별 비중을 살펴봅니다.
- 원리금보장형과 실적배당형 상품을 구분합니다.
- 기존 상품을 매도하지 않고 그대로 이전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 매도해야 한다면 중도해지 이자와 손실 가능성을 계산합니다.
- 이전할 금융회사의 수수료와 상품 선택 범위를 비교합니다.
- 퇴직금을 일시금과 연금 중 어떤 방식으로 받을지 계획합니다.
- 퇴직 후 몇 년 안에 사용할 돈은 무리한 투자에서 분리합니다.
현재 금융회사의 상품이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장기간 운용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이전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퇴직이 임박했거나 곧 생활비로 사용해야 하고 원금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높은 수익률 광고만 보고 서둘러 옮기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금융회사보다 내 노후 계획이 먼저입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는 가입자에게 금융회사를 선택할 기회를 넓혀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금융회사들이 수수료를 낮추고 상품과 서비스를 개선하도록 경쟁하게 만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직연금의 목적은 금융회사 사이를 자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퇴직 이후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시작되는 시기, 퇴직 후 필요한 월 생활비, 대출 상환액과 다른 금융자산을 함께 놓고 판단해야 합니다.
저 역시 2027년 6월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퇴직 직후 소득이 줄어드는 시기에 생활비와 대출 상환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먼저입니다. 남들이 증권사로 옮긴다는 이유만으로 따라가기보다, 현재 가입 형태와 상품부터 확인하는 것이 저의 첫 번째 준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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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할매의 한마디😊
퇴직연금은 한두 번의 높은 수익을 기대하며 움직이는 여유자금이 아닙니다. 직장을 떠난 뒤 오랫동안 생활을 지탱해야 할 소중한 노후자금입니다.
은행에 두었다고 무조건 안전한 것도 아니고, 증권사로 옮겼다고 저절로 돈이 불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금융회사의 이름보다 내 계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손실이 생겨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퇴직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택은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나의 생활비와 대출, 남은 운용 기간에 맞는 곳을 고르는 일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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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 하루 261억 원씩 옮긴다, 직장인 퇴직연금 머니무브
15조9천억 원, 약 25만 건, 하루 평균 261억 원과 금융회사별 이동 현황의 출처입니다. -
고용노동부 –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안내
실물이전 절차와 이전 가능한 제도·상품 범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고용노동부 – 퇴직연금이란?
DB형·DC형·IRP의 정의와 운용 책임에 관한 공식자료입니다. -
고용노동부 – 2025년 우리나라 퇴직연금 투자 백서
퇴직연금 적립금 501조4천억 원, DC·IRP 비중과 ETF 투자금액의 출처입니다. -
예금보험공사 – 퇴직연금 예금자보호 안내
DC형·IRP 안의 보호 대상 예금에 적용되는 별도 1억 원 보호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